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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 정도를 달려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뭐, 이제는 너무 익숙한 일이지만, 비엔티안 시내는 전혀 가깝지 않았다. 우리는 또 툭툭이를 타야 할 운명이었다. 도대체 왜 터미널이 시내에서 가깝지 않은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툭툭이나 승합 차량을 위해 일부러 터미널이 멀리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은 공생 관계인 것이다.
방비엥에서 비엔티안까지 오는 VIP 버스가 한 사람에 4만 낍이었는데, 비엔티안 버스 터미널에서 시내로 가는 벽도 없는 승합차량은 한 사람에 2만 낍이었다. 한화로 하면 큰 돈이 아닌 게 분명하지만,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요금 체계가 아닌가. 툭툭이가 모든 시내 교통 수단의 먹이사슬 최상층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오늘은 삐 마이의 마지막 날이고, 이미 날은 저물어 푸르스름한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방비엥이었으면 이미 오후 다섯 시에 물 뿌리기는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수도는 달랐다. 미리 준비하고 있어 천만다행이지만, 내가 앉은 반대편 자리로 환호 소리와 함께 물벼락이 쏟아졌다. 한 번이 아니었다. 차 짐칸에 커다란 물양동이를 싣고 다니며 툭툭이나 오토바이에 탄 사람을 적시는 젊은이들, 가게마다 나와 (역시 음악을 틀고) 물을 뿌리는 사람들도 비엔티안은 난리도 아니었다. 해가 졌기 때문에 여간 추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멈출 기색이 없어 보였다. 비엔티안의 시청 앞, 주요 도로에 내렸을 때, 대로 양쪽으로 레이저 빛이 번쩍이고 물의 사도들이 지나가는 차를 막은 채 물을 뿌리고 춤을 추는 게 보였다. 쉽게 끝날 분위기가 아니었다. 체온은 급격히 떨어졌지만, 신이 났다. 이왕 젖은 거 당장에라도 달려가 물을 맞으며 춤을 추고 싶었다. 그래도 일단 호텔은 찾아야 했다.
간판이 제대로 달려있지 않아 찾는 데 애를 먹었으나 그리 오래 걷지 않아 숙소를 발견하고 짐을 풀 수 있었다. 우리는 대충 가방을 내려놓고 젖은 그대로 밥을 먹으러 나갔다. 오후 일곱 시가 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피자를 좋아하는 D가 번듯해 보이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나를 이끌었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가족을 동반한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샐러드 바를 하나 시키고, 피자를 주문했다. 피자가 나오는 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세 접시나 먹어치웠다. 에어컨이 너무 잘 나와 흠뻑 젖은 옷 때문에 몹시 추웠다.
피자를 기다리며 바로 앞에서 차도를 막고 물을 뿌리는 젊은이들을 보니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떠올랐다. 그때 서울 시민들도 곳곳에서 지나가는 차를 막아선 채 본네트를 두드렸지 않은가. 많은 차들이 경적으로 구호 소리를 울려야만 그들을 지나갈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여긴 더 (물) 소모적이고 집요했다. 하지만 십 년도 넘은 그때 생각이 나며 매년 이러고 즐길 수 있다는 게 부러워졌다.
피자는 정말 피자헛 같은 곳에서 먹던 맛과 똑같았고, D가 이번 여행 중 가장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린 길을 나섰다. 도대체 어떻게 놀고 있는지 직접 보기 위해서. 하지만 멀리 가지 않아 사람들이 우리에게 물 바가지를 휘두르고, 의자에 앉혀 대야에 받은 물을 머리 위에서 쏟아 붓고, 호스 끝을 손가락으로 말아 길고 멈춤 없는 물줄기를 상체 위주로 두들겼다. 이건 젖지 않을 수 없었다. 제삼의 성에 관대한 라오스 답게 여장을 한 남자들이 브래지어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춤을 췄고, 어떤 거대한 몹집의 수염난 아저씨는 우리에게 키스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누군가는 지나가는 이들의 몸을 더듬고, 술을 먹으라고 권하고, 서로 물을 쏟아붓다가 춤을 추고 환호했다. 라오스에서 삐 마이 물 축제를 즐긴다면 그건 바로 비엔티안이었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무려 밤 열 시까지 이곳은 아스팔트 위에서의 물놀이를 즐겼다. 수도세가 걱정이 될 판이었다. 게다가 내일은 병원이 폭발할지도 몰랐다. 늦은 시각이 되자 그렇게 노는 친구들도 몸을 덜덜 떨고 있다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자적으로 (신기하게 주로 미용실 앞에 모여있었다.) 물을 뿌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주류 회사에서 무대를 설치해 음악을 틀고 물을 제공하고 동시에 술을 파는 곳도 있었다. 아예 디제이가 초빙되어 남푸 분수나 탐논 삼세타이, 메콩 강변에서 음악을 틀었다. 우리는 분수 옆에 설치된 와인 쿨러 회사의 무대에서 잠깐 시간을 보냈는데 열정적인 DJ 팀이 마이크로 끊임없이 추임새를 넣으며 사람들을 흥분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더 재미있었던 건 그냥 시민들이 모여 물을 퍼붓는 곳이었다.
도대체 언제 그렇게 연습을 한 건지 라오스 젊은 여자들은 기가 막히게 춤을 잘 췄다. 게다가 외국 여행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끔은 외국인이라고는 우리 둘 밖에 없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다. 모두 이 도시의 젊은이들이었고, 뭐랄까, 쉽게 다가가기 힘든 저들만의 흥(분)이 거리를 휘돌았다. 우리는 그냥 거리를 왕복하며 물만 신나게 맞아주었다. 역시 수도는 다르다고 하면서.
그러나 여행자 도로나 물을 뿌리는 대로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가게가 셔터를 내리고 있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그러니까 우리 숙소 쪽으로 조금만 와도 이곳은 유령 도시처럼 텅 비어 보였다. 그런 '텅 빈 거리'는 다음날까지도 이어졌다. 휴일은 화, 수, 목 삼 일이었지만 샌드위치 데이인 금요일에도 쉬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방비엥 터미널에서 만난 시카고에서 온 스티브처럼 모두 휴가를 떠난 모양이었다. (그들은 방비엥으로 올라갔거나 고향으로 돌아갔거나 아니면 태국으로 떠나갔겠지?)
어쨌든 마지막까지 물 축제는 제대로 즐겼다는 자평이 있었다. 내심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긴 했지만, 그저 오늘은 즐거우니까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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