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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종합해 봤을 때, 나는 혼자 여행해야 하는 사람임을 알았다. 나는 속박을 원하고, 또 원한다. 그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았을 때, 나는 진정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최고의 여행 친구와 함께하기 때문에 나는 더 성장할 수가 없다. 그것이 정답이다. 나는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그냥 갈림길에 주저 앉는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또 조금은 바뀌어있겠지만, 끝없이 조급해 했던 이유는 그 폭의 미미함 때문이다. 나를 극으로 몰아붙이고, 떠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보며 그리워할 때, 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는 과정은 당신의 예상보다 훨씬 슬펐다. 왜냐하면, 내가 또 이런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시간과 수없이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전문가가 고른 훌륭하고 가슴 뛰게 만드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지만, 내가 직접 고른 음악을 들어야 할 때가 있음을 깨달았다. 여행 초반이었는지 중반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여행을 통해 바뀌길 바란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바뀌었다. 어떤 곳에 있어도 나는 그대로라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친구들을 만났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적다. 이유는 얼마나 단순한 데 있는지. 나는 사람을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걸 몰랐을까? 왜 그 사실을 알면서도 부정했을까. 나는 굳은 생각을 깨고 싶었으나 그것은 일종의 특혜, 종교적으로 말하면 선물과도 같은 특질이었다. 나는 그런 행운아가 아니다.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오지랖 넓은 태국 여성 낍이나 7개월 동안 혼자 여행하는 스위스 청년, 브라질에서 온 진중한 앤더슨과 친화력이 좋았던 홍콩 사람 데이지, 그리고 부산에서 온 잘 생기로 태양처럼 활동적인 청년 등과는 다르다. 옆에 있으면 절로 귀를 기울이고 싶은 그런 사람은 아니다. 아마 어릴 때부터 그런 사실을 알았기에 글을 쓰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걸로라도 누군가를 즐겁게 해 주고 싶었다고 바랐기 때문이다...
갑자기 유행 지난 비참함을 끄집어 내고 싶진 않기 때문에 글길을 돌리자면,우리는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혼자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죽을 만큼 외롭고 싶은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죽을 만큼 혼자라는 사실을 체감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 앞으로 나와 함께 할지도 모르는 사람, 그리고 나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여, 내가 혼자이고 싶어한다고 비웃거나 서운해 하거나 아쉬워하지 말라. 당신도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은가. 다만 난 그런 순간이 몇 번이라도 더 많을 뿐이다. 내 멍청한 머리를 뭔가로 채워놓으려면, 나는 약간 겁 먹은 표정을 한 채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고 애써 웃고 괜히 책을 펄럭이고 결국 혼자 술에 취하면서 뭔가를 써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쓴 글들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두려운 치부의 화신이 되기 마련인데, 언젠간 그런 부끄러움도 무시할 수 있길 바란다. 모두 떨어져 나가거나 결국 누군가는 나도 모를 나를 조금은 이해하거나 둘 중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긴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한 가지가 나를 괴롭힌다. 나는 특별하지 않은데 자꾸 특별해 지고 싶어 한다. 중학교 2학년의 정서가 나에게서 아직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방비엥의 방갈로 한가운데, 정원이라고 봐도 좋은 푸른 녹지 위 탁자에 앉아 쓰고 있다. 사위에는 아무도 없고, 모기도 딱히 내 피가 좋아서 나에게 자꾸 몰려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들도 먹고 살자고 내 다리에 자꾸 들러붙을 뿐이다. 먹고 산다는 것. 그보다 중요한 건 없는 것. 그래서 그 너머에 있는 뭔가를 자꾸만 잊게 만드는 것. 저 너머의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냥 그렇게 먹고 살다가 가고 마는 것. 나와 함께 여행하고 있는 D는 인생에서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여길까. 사실 난 그것조차 잘 모른다. 아마도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좋은 친구들과 가족이 그의 곁에 있고 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그는 가장 꿈 꿀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여길까. 누군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줬으면 좋겠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툭, 그렇게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갑자기 그 답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결국 더듬더듬 대답할 때야 나는 진실로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마저도 상황에 맞춰서 반쯤 거짓이나 반쯤 허영으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아무러면 어떠랴. 누구도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데. 그리고 그런 질문은 결국 제 자신이 던져야 하는 것인데. 그리고 죽을 떄까지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하거나 그 즈음에 가서야 겨우 깨닫지만, 이제는 너무 노쇠하고 지쳐 아무 상관 없을지도 모르는 것인데. 김연수 작가가 인간은 인간을 이해할 수 없으며, 결국 그렇기 때문에 문학이 존재한다는 맥락의 글을 썼다. 혹시 내가 잘못 이해했더라도 상관은 없다.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아마 며칠 전에도 비슷한 문장을 썼던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노력한다. 불가능을 향해 달려갈 줄 알기에 우리는 아름다운 종인 것이다. 나는 제발 더 많은 이들이 불가능을 향해 뛰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의 헛수고가 조금은 더 아름다울 수도 있을 텐데.
여기에 앉아 글을 쓰기 전, 한 나이 지긋한 분이 탁자로 와 홍차 티백을 우려 마셨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한 잔 타려고 했는데 그의 것이 숙소에서 제공한 마지막 티백이었다. 나는 그에게 "운이 좋으시네요, 마지막이었어요."라고 했고, 그는 그 말에 손사레를 치더니 잠깐 기다려 보라고 했다. "내 방에 티백이 있어. 그걸 가져오면 돼. 일단 내 걸 마셔." 나는 넙죽 컵을 받아 마셨다. 그는 정말로 방으로 돌아가 티백을 가져 오더니 새로 한 잔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곤 다시 들어가며 나에게 새 티백을 하나 던져줬다(정말로 던졌다). 이래서 희망을 버릴 수가 없다. 나는 두 잔째의 티백을 우려마시며 바람 같이 왔다 간 그를 떠올린다. 우리가 서로를 알게될 기회는 절대로 없겠지만, 그렇다고 친절을 배풀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것도 이해의 대양을 향해 놓는 작은 다리 하나 쯤은 될 것이다.
아직도 여행은 열흘이 남았다. 나는 이 순간이 좋다. 모기에 뜯겨도 좋다. 풀벌레 우는 소리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솔직히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A. 인간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B. 나는 인간이다. C. 그러므로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얼마나 명쾌한 논법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다른 인간보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걸 더 원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인간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사실 이 말이 맞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사라지고 나서도 멀쩡히 돌아갈 어떤 체계를 말이다. 누구도 그 체계를 인식할 고등 동물이 없다면 그것을 삶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삶이란 다름 아닌 '사람'의 것이니까. 그래도 우리는 꽤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그 과정이 새삼 버겁다 하더라도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다.
돌아가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다. 시월엔 M을 따라 몬트리올에도 가봐야겠다. 그 전까진 뭐라도 해서 다시 이렇게 긴 여정을 떠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더 많은 기회와 더 많은 고독과 더 많은 쭈뼛거림을 노려봐야겠다. 이것은 비난도 무책임함도 이기적인 생각도 아니다. 그저 내가 그러길 원할 때, 내가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고 느낄 때를 이해해 달라는 부탁이다. 이런 치기 어린 생각을 정말 치기 어린 생각을 할 더 어린 나이에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나를 보고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상태에 이미 도달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왜 아직도 부끄러운 말을 되풀이하고 있어야 할까. 왜 나에겐 아무런 철학도 없을까. 독서를 즐겨하는 이유가 누군가를 통해 대신 생각하려는 데 있는 게 아닌가 두렵다.
괜찮아. 좀 늦게 갈 뿐이지 뭐. 못 가더라도 가려 했었다는 것은 기억하면 되지 뭐. 그러니까 이런 글쓰기도 무방하다. 마치 홀로 멀리 떨어진 것처럼, 자유롭게, 바람소리와 벌레 소리에 실려 흐른다. 지금은 약간 짜증이 섞인 감상적인 기분이다. 우울도 아니고, 그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못마땅할 뿐이다. 내게 있는 어떤 결핍이 문제인 거겠지. 그래도 다행인 건 방으로 돌아가면 내 여행 친구가 날 기다리고 있고(사실 내 주변에서 달밤의 조깅을 하고 있다), 우리의 여정도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괜찮겠지. 나도 괜찮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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