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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그런 날이 있다. 아침부터 바쁜 그런 날. 방비엥에 하루 더 있기로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묵던 아더 사이드 방갈로를 떠나 바로 옆에 있는 바나나 방갈로로 이동해야 했다. 게다가 열 시엔 약속도 잡혀 있었다. 어제 잠깐 사쿠라 바에 갔을 때 만난 한국분들이 함께 블루라군에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블루라군으로 가는 툭툭이는 보통 15만 낍이 넘는 모양이라 인원을 모아서 함께 가는 게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갈 생각은 못 하고 있던 우리였길래 얼떨결에 승락을 했고, 출발 시간이 열 시가 되었다. 우리를 포함해 모두 아홉 명의 한국인이 모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바쁘지만 뭔가 재빨리 해결하는 데 우린 일가견이 생겼다. 일어나 씻고 짐을 싸고 체크 아웃과 체크 인을 하고, D는 컵라면을 먹고 나는 믹스 커피를 마셨다. 선크림도 열심히 발랐다. 그러고 나서도 천천히 약속 장소인 K-Mart까지 걸어가니 열 시를 삼 분 정도 넘겼던 것 같다. 굉장히 잘 생기고 활동적인 부산 사나이 한 명과 블루라군이 너무 좋아 이 일행을 모은 여자 두 명, 그리고 처음부터 일행이었는지 여기 와서 만났는지 모를 남녀 네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딱 봐도 우리가 나이가 제일 많이 보였는데 알고 보니 서른 다섯인 우리보다 나이 많은 형님이 한 분 계시더라. 어쨌든 툭툭이 흥정은 다른 분들이 알아서 다 처리해 주셨다. 보통 방비엥에서 툭툭이를 타고 블루라군에 갈 때는 돈과 시간을 미리 합의해야 한다. 같은 툭툭이로 돌아오기 때문에 거기서 운전자가 기다려주는 시간이 곧 우리가 블루라군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열 시가 조금 넘어서 출발했는데 부산 친구는 무려 오후 세 시에 돌아오자고 합의를 보았다. 출발로부터 거의 다섯 시간인데 그 정도면 엄청 긴 시간이라고 한다. 중간에 만 오천 낍의 통행료(왕복)를 승객이 내야하는데 그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다 내는 걸로 했다. 도대체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는 나는 가위바위보도 거의 마지막까지 밀렸다가 겨우 이겨 다른 분이 지불했다.
블루라군까지 가는 길엔 두 가지 고난이 있었다. 한 가지는 즐거웠고, 한 가지는 끔찍했다. 즐거운 고난은 삐 마이 기간, 사방에서 미친 듯이 퍼부어대는 물 세례였다. 젊은 친구들이라 물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생수를 파는 아저씨를 잘못 건드렸다가 커다란 통 반에 가득 찬 물을 아홉 명이 그대로 얻어맞았다. 게다가 가는 길 중간마다 얼마나 음악을 틀어놓고 물을 퍼부어대는 민가나 상점이 많던지 "준비하세요."라고 누군가 외치면 그대로 찬물이 쏟아져 들어오곤 했다. 어차피 물놀이를 하면 젖을 테니 미리 준비운동 삼아 맞는 것도 좋았다. 게다가 시원하기도 하니까. 참 여러가지 방법으로 물을 맞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어린 소녀들이 양동이로 퍼부은 물이었다. 그냥 물이 아니라 꽃잎을 띄워 뿌려준 덕분에 사람들 몸 이곳저곳엔 노란 꽃잎이 붙어있었다. 후에 저녁 시간이 다 되었는데 얼음을 넣어 차갑게 식힌 물을 뿌렸던 비엔티안의 어떤 무리들에 비하면 정말 황홀한 물 세례가 아닐 수 없었다. 모두 약간 감동하는 분위기였다.
반대로 괴로운 고난이 있다면 그건 흙먼지였다. 비포장 도로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나면 뿌연 먼지가 온 도로에 가득했다. 민가도 없어 물을 맞지도 못하면 그 먼지를 다 마셔야했다. 게다가 잔돌이 많아 얼마나 덜컹거리는지 엉덩이가 다 아플 정도였다. 그렇게 이십 분? 삼십 분을 오프로드 경주하듯 달리고 나서야 우리는 블루라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놀이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꽝시 폭포 같은 자연을 기대했지만, 사실 무슨 축제판이나 다름없었다. 커다란 음악이 울려퍼지고, 좌판에선 먹을 것을 판다. 뭐랄까 오일 장이 열린 분위기랄까. 게다가 라군이라고 하기도 뭣한 작은 호수가 다리를 사이에 두고 누워있는 게 전부였다. 산쪽으로는 집라인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예상과는 다른 행색이라 처음엔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이곳에 있는 다이빙대가 꽝시 폭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높고, 물총을 든 라오스 꼬마놈들이 우리를 집요하게 노린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 반전이 일어났다. 다른 일행은 다들 물속에 들어갔지만, 나와 D는 약간 망설였었는데, 타잔처럼 줄을 타고 호수 위로 날아가 뛰어내리고 나자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물이 차갑고 생각보다 선선한 날씨라 춥긴 했으나 역시 한 번 젖고 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 수영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힘이 났다. 나는 보다 낮은 점프 지점을 무시하고 D에게 제일 높은 곳으로 바로 올라가자고 해버렸다. 꽝시 폭포에서 물에 발만 담궜던 게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고목의 가지를 밟고 - 다이빙대라기보다는 그냥 높은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놀이였다. -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점프 지점에 서자 순간 도저히 뛸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밑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높았던 것이다. 남자들도 쉽게 뛰어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청록빛으로 넘실거리는 수면으로 들어가면 다시는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덥쳐왔다. 게다가 아래 있는 다이빙대나 줄을 타고 물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이어져 혹시나 부딪히지는 않을까,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얌전히 떨어지는 게 아니라 힘껏 발돋움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부산 청년이 먼저 뛰었다. 이미 어제 여기서 많이 놀다 다시 온 그는 머뭇거림도 없이 입수했다. 물이 부숴진 왕관 모양으로 튀어올랐다. 다음으로 D가 뛰었다. 풍덩! 무사히 살아올라왔다. 하지만 그 모든 이미지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당장 나도 뛰어야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법. 다시 내려갈 마음은 없었다. 수면은 아득했다. 나는 수백년 동안 자랐을 가지에서 몸을 날렸다.
처음엔 바람이 불었다.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중간 지점 쯤 몰려왔다. 그리고 여지없이 물속으로 빠져버렸다. 물속에 박혀있던 시간은 이 초? 수면 위로 올라오자 내가 어떻게 뛰었는지도 모를 일 같았다. 배로 떨어져서 가슴이 좀 아팠으나 그 외 아픈 곳은 없었다. 그래,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후로 나는 두 번을 더 뛰었다. 두 번째는 좀 덜 무서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게다가 발을 헛디뎌 멍청한 포즈로 떨어지고 말았다. 세 번째는 거의 바로 뛰었는데 그제서야 좀 덜 무서웠다. 한국에서 온 한 여자분이 한 십 분 정도 가지 위에서 어쩔 줄 모르다가 결국 내 바로 다음에 입수했는데 "세 번 뛰면 안 무서워요."라는 무서운(?)을 말을 해줬던 것 같다. 세 번째 입수는, D의 말에 의하면 아주 매끄러웠다고 한다.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겼어야 하는데! 결국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 내 몸이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한 번 더 뛰고 싶었지만, 아침도 안 먹고 점심 시간이 넘어서까지 물놀이를 하고 높은 데서 뛰어내렸더니 힘이 없었다. 다시 없는 경험이었다.
다이빙 말고도 블루라군이 재미있었던 건 물총을 든 뜨악한 라오스 아이들 때문이었다. 순수하고 부끄러움 많고 그럴 것 같지? 완전히 지독한 녀석들이었다. 먼저 그들과 물싸움이 붙은 툭툭이를 함께 타고 간 남녀 네 분은 성능 좋은 물총에 얼굴을 쉴새없이 얻어맞아 제대로 붙지도 못했다. 한 녀석은 가늠쇠와 가늠좌로 조준사격 하듯 물총을 쏴대는데 한국 군대로 초빙하고 싶을 정도였다. 서로 쫓고 쫓기고 뭔가 전세가 불리한 느낌이 들어 나도 1.5리터 물병을 채워 나섰다. 실은 나도 좀 지독하다. 애들이라고 봐주는 거 없다. 한 번의 손목 털기로 엄청난 물을 나와 상대하는 녀석의 얼굴에 들이부었다. 눈도 뜨지 못하게, 리듬에 맞춰서, 나를 겨냥하지 못하도록. 이게 계속 물을 붓는 것보다 물을 털어내고 눈을 뜰 수 있을 타이밍마다 부어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 믿거나 말거나, 나중엔 그냥 불쌍해서 물도 맞아주고 도망도 다녀주고 그랬다. 게다가 한 아이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는지 - 다른 친구들이 녀석을 붙잡은 다음 물을 퍼붓는 전략을 펼쳤기 때문에 - 물총을 집어 던지고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그랬다. 하하, 그래도 귀여운 아이들이다. 휴식 시간에 악수를 청하자 뭔가 비장한 표정으로 그에 응한다. 사실 물에 들어가 있던 시간보다 걔네하고 노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배가 너무 고픈데 밥을 먹으면 물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아 맥주 한 캔과 구운 오징어, 그리고 축축한 땅콩을 사서 먹었다. 남자들은 테이블에 다 모여 우리의 안주를 나눠 먹었다. 마른 오징어는 한국하고 맛이 똑같았다. 아저씨가 꼬치에 끼워진 오징어와 화로를 들고 다니다가 바로 구워줘서 오히려 더 감칠맛이 났다. 땅콩은 이상하게 축축하게 젖어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얼떨결에 따라온 블루라군이지만,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세 시에 돌아가기로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두 시로 시간을 바꿨다. 물론 오는 길에도 엄청난 흙먼지를 먹고, 엄청난 물 세례를 맞았다. 방비엥의 마지막 낮이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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