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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라오스의 설날, 삐 마이가 시작된다. 간밤에 딴 것도 아니고 한국의 새우탕면을 먹었다가 새우 알레르기에 시달린 D는 매우 수척해 보였다. 우리는 오후 늦게 일어났다. 방갈로 발코니에 서서 바라보기만 해도 세상의 햇빛이 얼마나 뜨거울지 가늠이 됐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가 닿지 않는 강 건너편에선 분명 물 축제가 한창일 것이다. 둘 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우리는 나가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방비엥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기 때문에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바꿔야 했고, 숙소도 연장을 하든 다른 곳으로 찾든 해야했다. 우리는 두 시가 넘어서야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걸었다. 강변에서 중심지로 올라가는 작은 골목부터 술집에서 양동이에 물을 담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뿌리는 직원들이 보였다. 시작부터 물 세레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태양은 뜨거웠고, 물의 찬기운이 몸에 닿자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센트럴 백 패커가 있는 중심 도로는 물론 거기서 격자로 이어진 골목의 식당이나 바 모두 티셔츠를 맞춰 입은 직원들이나 신이 잔뜩 난 여행자들이 모여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을 뿌리고 있었다. 아예 트럭에 물을 싣고 다니며 뿌리는 현지 망나니들도 있었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며 물총으로 저격하는 이들도 있었다. 누구도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꼬마 아이들도 조그만 물총으로 우리에게 제 오줌 같은 물줄기를 쐈다. 통이 큰 쪽은 역시 서양인들이었는데 칵테일을 마시는 버킷에다가 물을 담아 다가와 웃으면서 머리에 붓거나 아예 얼굴에 후려치기도 했다. 같은 편(?)도 수가 틀리면 서로에게 물을 쏟고,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뿌리고, 오토바이는 다시 물총을 쏘고, 물 호스가 하늘로 포효하고, 잔뜩 젖은 한국 대학생들은 수원지인 물통을 배낭처럼 매고 호스로 연결된 물총을 장착한 채 전투 본능을 뽐내고 다녔다. 물총을 들고 있다는 건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는 증거였다. 진지가 있는 이들과 타격대들이 서로를 겨냥하다가 물이 떨어지면 함께 총알을 채우기도 했다. 사방에서 요란한 음악을 틀어놓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꽤 경건하고, 차례를 지낸 다음 함께 티브이를 보고, 고스톱을 치고, 술을 많이 마시고, 그러다가 가족끼리 대판 싸우기 마련인 한국의 설날과는 대조적이었다. 특히 루앙 프라방이나 방비엥처럼 외국 여행자들이 많은 도시에서는 현지인들도 몹시 흥분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원래 액운을 씻어 준다는(게다가 더럽게 덥기도 하고) 의미로 물을 뿌리는 거라고는 하지만, 이건 거의 마을 전체가 워터 파크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냥 평범한 반바지를 입고 갔다가 반쯤 젖은 나는 아예 수영복을 사서 갈아입었다. 속옷을 안 입으니까 하나라도 덜 젖을 수 있지 않은가. 삐 마이는 우리가 방비엥을 떠나는 내일 모레까지 계속 될 테니까, 나의 전투복은 이 갈색 수영복이다. 아마 내일 오전 쯤에는 물총도 하나 사지 않을까 한다. 비엔티안에서 묵을 숙소를 알아보고 다시 그곳에서 하노이로 넘어가는 비행기 편을 알아보다가 해가 거의 저물었기 때문에, 이런 시각에 물을 맞았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십상일 테니 말이다. (이미 말했듯이 물총을 들고 있다는 건 물을 아주 많이 뿌려달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게다가 안 그래도 시끌벅적하던 이곳의 밤이 오늘부터는 어떻게 변할지 몹시 궁금해 졌다.
일단 몸을 좀 말리기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하늘에는 아주 조용한 움직임으로 부유하는 열기구가 떠 있었다. 무지갯빛으로 색칠된 열기구는 어제 거대한 크레인을 보면서 느꼈듯 아주 초현실적이었다. 이 야자수와 낡은 오두막, 그리고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은 아주 이질적으로, 한편으로는 아주 합당하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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