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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방갈로로 숙소를 옮긴다. 늦게 일어나진 않았지만, 숙취가 있다. 머리는 무겁고 속은 더부룩하다. 소주를 마신 것까진 좋았는데 그 이후로 여러 술을 섞어 마시다 보니 이 꼴이 된 모양이다. D의 상태는 더 안 좋아서 그는 방갈로로 옮겨 침대에 눕자마자 오늘 하루 종일 여기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난 몸은 힘들면서도 까닭없이 조급해져 있었다.
그래도 밥은 먹었어야 했으므로 우리는 작열하는 태양을 뚫고 거리로 나왔다. 먼저 여행사에 가서 내일 할 카약킹을 예약하려고 했는데, 그냥 우리는 충동적으로 오늘 하기로 했다. 그것도 바로 한 시간 후에. 오후 세 시 시작이니까 햇살도 좀 덜 할 것 같았고, 이왕 숙취로 몸이 힘든 거 그냥 하루에 몰아서 힘을 쓰고 내일은 쉬자는 취지였다. 한 사람당 무려 12만 낍이나 주고 투어를 예약했다. 그리고 우리는 방으로 돌아와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챙기고 법썩을 떨었다.
카약을 실은 자동차는 하차 지점에서 5km 떨어진 곳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태국인으로 보이는 커플 두 사람이 있었고, 가이드 한 명이 우리와 동행했다. 처음엔 노를 젓는 게 무척 어려웠다. 왼쪽 손목이 여전히 아팠기 때문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았고, 속도를 내거나 방향을 틀 땐 거의 D가 힘을 다 쓴 것 같다. 시작하자마자 다른 카약에 부딪히고 이상한 곳으로 떠내려가고 난리도 아니었다. 가이드를 우리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나도 요령을 익히자 우리는 가이드와 태국인 커플을 저만치 뒤로 놓아두고 마구 질주하기 시작했다. 중간마다 물이 얕아지고 돌도 많았지만 대충 가야할 물길이 보였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다. 나와 D는 함께 노를 젓기도 하고, 번갈아 젓기도 하고, 젓다가 다른 일행을 많이 따돌렸다 싶으면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남콩 강을 떠내려오는 길엔 절벽의 절경을 볼 수 있었다. 강 전체를 다 덮고도 남을 정도로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절벽은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위로 햇살이 걸쳐져 뚜렷한 광선으로, 빛의 길로, 손을 뻗으면 뭉클할 정도로 진한 농도로 꿈틀거렸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를 두고 이른바 '빛 내림'이라고 하는데, 방수 가방 안에 들어있는 카메라도 꺼내지 않았다. 노예처럼 노를 저어야 했기도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냥 눈으로 보고 즐기고 싶었다. 사실 방비엥 절경의 핵심은 강이 아니라 산이다. 절벽이다.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 조그마한 도시의 매력이었다. 루앙 프라방까지만 하더라도 딱히 라오스의 매력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방비엥에서 자연과 축제 모두에게 좀 더 가까워지자 왜 이곳을 찾아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인상적이었던 건 절경만이 아니었다. 강 양쪽으로 바가 늘어서고 강변에 세운 오두막에 온갖 인종의 사람들이 앉아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강 중간까지 걸어온 사람들은 저들끼리 신나게 놀다가 우리처럼 카약을 타거나 튜브를 타고 떠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미친듯이 물을 뿌렸다. 사실 카약은 뒤집어 지지 않으면 물에 많이 젖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강 아래쪽에서 카약킹을 하던 사람들이 머리 끝부터 젖어 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그들이 뿌린 물은 얼마나 시원했던지. 고맙다고 외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액티비티에 큰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한곳에서 오래 머물자 뭐라도 하긴 하고 싶어졌고, 남들만큼 많이는 아니더라도 이삼 일에 한 번 정도는 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편이 낫다는 걸 알게되었다. 팔은 아프고, 물집이 잡히고, 몸은 흠뻑 젖었지만, 가만히 배를 표류시키고 그늘 아래 들어가 바람을 맞고 있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배를 띄어라. 노를 젓는 손은 바쁘다. 스피커는 요란하게 찢어지고, 산은 아주 거대한 확성기가 되었다. 이 작은 미친 마을이 몹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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