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바빴다. 씻지도 않고 옷만 걸친 채 강가로 간 우리는 어제 미리 봐둔 방갈로 숙소 리셉션에 방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오늘은 없지만, 내일은 방이 있다고 한다. 방 상태를 확인한 후 이 박을 예약했다. 첫날 삼십 만 낍도 미리 지불했다. (그런데 바우처도, 영수증도 받지 못했고, 심지어 우리 이름을 적지도 않았다. 좋다, 내일 어떻게 나오나 보자.) 그리고 다시 우리 호텔로 돌아와 카드로 일 박 비용을 계산했다. 이렇게 하여 방비엥에서 무려 5박을 하게 됐다. 방콕이나 루앙 프라방보다 긴 일정이지만, 아직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강가 오두막에 늘어지게 누워 푹 쉬는 상상에 잔뜩 가슴이 부풀었다.
루앙 프라방 한인 마트에서 사온 북경 짜장으로 뽀글이를 해서 아침 겸 점심을 떼운 우리는, 천천히 씻고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밤 늦게까지 음악 소리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으로 우릴 괴롭힌 구 활주로부터 가보았는데, 곧 시작될 설날 축제 준비로 한창이었다. 그곳에도 시장이 하나 있었는데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을 상대로 장사하는 곳인 모양이었다. 평상복과 장난감, 신발 따위를 팔고 있었다. 가격도 정확히 쓰여있는 걸로 보아 차라리 여기서 뭘 사는 게 더 저렴해 보였다.
다음으로는 루앙 프라방 베이커리란 곳에 왔다. 아이스 커피와 도너츠, 그리고 크루아상을 주문하고 편안하게 앉아 있다. 한국사람에게도 굉장히 유명한 곳인지 한 시간 정도 앉아있는 지금 주변은 온통 한국인들이라 마치 한국 카페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중간에 튜빙을 하러 가는 데이지도 만났다. 그녀는 어제 말한 스위스인과 국적을 알 수 없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 방수팩에 수영복을 입은 모습을 보고 내일 카약을 타기 위해 나 역시 그런 것들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고, D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나는 잠깐 M과 통화를 하다가 밀린 노트를 정리했다.
꽤 많은 시간을 보낸 후, 이번엔 여행사로 향했다. 날이 흐려 곧 비가 올 것 같았다. 그런데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종일 투어를 하는 건 우리가 예정한 내일 모레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레, 그러니까 14일부터 16일까지는 라오스의 설 연휴인 삐 마이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내일은 숙소를 옮기느라 아침부터 튜빙과 카약킹을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반나절 코스와 종일 코스의 가격은 별 차이도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16일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일단 투어 예약은 접어두고 먼저 버스표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오후 한시 반에 출발하는 VIP 버스가 있어서(끔찍한 기억이었지만) 그걸 타기로 했다. 그리고 종일 코스는 포기하기로 하고, 그냥 모레 반나절만 카약을 타든 튜브를 타든 하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와 글을 쓰는데 D에게 가벼운 우울증이 찾아왔다. 집을 떠난 지 꽤 오래돼 그럴 수도 있었고, 음식이 잘 맞지 않아 그럴 수도 있었다. 함께 여행을 하는 사람이 우울해 졌을 떄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딱히 그런 면은 없었다. 샤워를 해서 기분을 좀 푼 D를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날씨는 시원했고, 거리는 북적였다. 맛있는 걸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낮에 봐둔 한국식 삼겹살을 파는 집(꽃보다 청춘에 나온 모양이었다.)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비싸지만 소주도 주문했다. 삼겹살과 함께 소맥을 마시면 그가 기운을 차릴지 몰랐다.
그런데 우리가 주문한 게 그냥 삼겹살은 아닌 모양이었다. 삼겹살 샤부샤부였다. 둥그런 불판 가장자리에는 홈이 파져있고, 거기에 육수를 부었다. 그리고는 함께 나온 야채를 넣어 익히다가 건져 먹는 것이다. (처음엔 잘못 주문한 줄 알았다.) 삼겹살 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느끼하지 않을까 했는데 중간 중간 파인 홈으로 대부분 걸러지고 일부만 육수로 흘러들어갔기 때문에 딱 적당했다. 게다가 라임도 함께 줘서 우린 팔라우 때를 회상하며 소주에 라임을 짜넣어 마셨다. 역시 한국 술과 음식의 힘은 대단하다. D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을 차렸고, 얼큰하게 취했다. 그리곤 '길 위에서'에서 가장 닮고 싶은 캐릭터가 '올드 불 리'라고 이야기했다. 그럼 넌 올드 불 돈! 안정적인 수입을 갖고 세상 모든 것을 연구하고 있는 괴짜 남자. 나는 여전히 화자인 샐 파라다이스를 동경하고 있었지만, 올드 불 리 같은 남자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였다. 딘 모리아티는 여전히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런 완벽한 미친놈을 만나보고 싶긴 하다. 그가 샐에게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니까.
우리는 기분이 아주 좋아져서 사원 비슷한 곳에 임시로 설치된 천막 시장에서 풍선에 다트를 던지고 놀았다. 세 발을 모두 맞춰 에너지 드링크를 한 병 받았고, 그걸 마시자 더욱 신이 나 사쿠라 바로 갔다. 거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다 기억할 수도 없었다. 나이가 많았던 한국 아주머니들, 아주 잘생긴 일본인 남자, 유쾌하게 몰려다니는 태국 여행자들과 라오스에 살고 있는 젊은 교민 세 명. 일요일 밤임에도 사람이 무척 많아 춤을 추는 이들로 마당(?)은 꽉 차 있었다. 그곳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두루두루 어울려 놀다가 자정이 되었고, 사쿠라 바는 영업을 마쳤다. 아쉬움에 어쩔 줄 몰라하는데 교민 친구들이 다른 곳에 가자고 했다. 그곳은 늦게까지 문을 여는 동굴 같은 클럽이었다. 그곳 역시 사람으로 꽉 차 있었고, 파티는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될 것만 같았다. D와 나는 얼큰하게 취해 멈추지 않고 춤을 추다가 호텔로 곧장 날아와 잠이 들었다.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여행을 해본 적이 없어 잘 되어가고는 있는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어디에 머무는 것도 어디로 향하는 것도 모두 즉흥적이라 즐겁지만, 그렇다,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느낀다. 초조하진 않다. 단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이번 편부터 틀린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교정하지 않습니다. :p)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