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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엥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매우 다양한 타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태국, 중국, 한국과 소수의 일본인을 비롯한 아시아계와 남미와 북미, 유럽, 호주에서 온 서양인들을 골고루 본다. 대체로 반쯤은 축제에 미쳐있고, 반쯤은 삼삼오오 얌전하게 돌아다니며 길거리 음식을 사 먹거나 잡화점에서 옷과 모자 따위를 둘러본다. 여행이 반을 훌쩍 넘어 삼분의 이 지점에 다다르자 어떤 부드러운 결핍이 느껴졌는데, D도 정확히 지적했듯이 긴 여정에선 두 사람도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건, 뭐랄까, 활기와 웃음이었다. 오두막이나 펍에 여럿이 둘러 앉아 맥주를 마시며 뭔가를 이야기하는 이들은 때때로 세상이 떠내려 갈 만큼 웃어대기도 했다. 나와 D는 워낙 얌전한(?)이들이라 웬만큼 술에 취하지 않으면 그렇게 웃을 수가 없었다. 활기가 사람이 덮을 수 있는 커다란 보자기 같은 것이라면, 두 사람이 직조할 수 있는 면적은 그리 넓지 않다. 그렇다고 끊임없이 다른 여행자를 붙들고 말을 거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음식이나 기분, 몸상태에 특히 민감한 D로서는 항상 들뜨고 흥분해 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종종 서로의 여자친구를 이곳으로 부르거나 Y와 K, 그리고 B와 함께 물총을 들고 이 좁은 마을을 뛰어다니고 싶을 때가 있었다. 강을 바라보며 모여 앉아 이상한 소리나 지껄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것이 향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사실 나는 그닥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긴 떠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땅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다. 그 땅에 있는 사람들과 누군가 나를 잘 아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하면 맞는 말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후에 올라올 미리 써둔 여행기에서 난 이미 외로움이 필요하다고 선언해 버렸다.)
고향이 우리를 가만 내버려두지만은 않았다. D는 예식장에 문제가 생겼고, 나는 끊임없이 직장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의 알림을 받아야 했다. 종종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바람에 안부를 묻거나 업무 상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어 응대도 해줘야 했다. 고작 28일의 자리비움이다. 다 버리고 떠난 것도 아닌데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사람처럼 굴 수는 없다. 그럴 때마다 어떤 피로를 느끼고, 그럼에도 지치기엔 너무 아깝다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런 식으로 다짐만 몇 번을 하는 건지 이젠 셀 수도 없다. 그 다짐이 다시 나를 피로하게 한다.
하긴 만약 친구 다섯 명과 함께 28일을 여행했다면 분명 중간에 싸우고 틀어지고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의견을 조율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두 사람만큼 좋은 숫자는 없다. 모두가 즐거운데 나만 즐겁지 않다는 건 흔히 착각이지 않았던가. 나 역시 지치거나 무감각한 표정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을 수두룩하게 보았다. 그렇다. 아무리 방비엥이 여유와 광기가 공존하는 곳이라 하더라도 사람은 저마다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다르다. 그걸 인정해야만, 한계를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 모든 머뭇거림의 책임이 저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밤이 깊어간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흥분과 쇠락의 반복이 시간의 속도에 채질을 한다. 그런데 이미 거기에 익숙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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