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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티안 왓따이 공항은 예상했던 대로 규모가 작았다. 많은 한국 분들이 하노이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을 전송하는 라오인 가족도 있었다. 그들은 싱글싱글 웃으며 포옹으로 이모 쯤 되는 여자를 보냈다. 그녀는 아마 하노이에 사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면세점에서 미니어처 위스키와 담배 한 보루를 샀다.
갑자기 문명 세계로 들어왔다는 느낌을 받은 건 비행기에 올라서다. 우리는 그나마 저렴한 베트남 항공을 선택했는데, 듣던 대로 출고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좋은 기종이었다. 베트남 전통 의상을 개량한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들이 친절한 미소를 지은 채 돌아다니고, 짐칸 아래는 모니터도 달려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우리에게 비상구 자리를 배정해 준 카운터 직원에게 감사했다. 비지니스 석이 부럽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타본 비상구 자리 중 가장 넓고 편했다.
연착도 없었다. 오히려 십 분이나 일찍 출발했다. 앞뒤로 뜨는 비행기가 없었기 때문에 기장은 그냥 자기가 원할 때 떠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듣기로는 하루에 스무 편 정도가 이 공항에서 뜬다고 하는데, 그 정도면 산속 사찰이나 다름없이 한가한 셈이다. 또한, 무엇보다 좋았던 건, 비행 시간이 짧다는 점이었다. 오십오 분? 버스를 탔으면 스물네 시간은 기본으로 갇혀있어야 했을 텐데 제주도 가는 기분으로(실제로 비엔티안에서 하노이까지의 거리도 제주도보다 짧다.) 우리는 나라를 바꿔 베트남에 도착했다.
하노이 공항은 홍콩 첵랍콩 공항과 인천 국제공항을 섞어놓은 듯한 이미지였다. 비행기부터 느낀 '문명 세계'로의 귀환은 계속됐다. 방콕 수완나폼 공항보다 깨끗했고, 입국 심사를 받는 곳까지의 거리도 짧았다. 게다가 까다로울 거라고 생각했던 입국 심사도 전혀 어렵지 않았다. 무비자 제약이 강화되면서 리턴 티켓을 요구할 때도 있다고 들었는데 요구는커녕 인사만 잘 해주더라. (그래도 당신이 갈 때는 꼭 미리 준비해 두길 바란다.) 여기서 많은 한국인들과 갈라졌다. 하노이를 경유해 인천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반대편에서 환승 수속을 밟았다. 많은 이들이 어디서 수속을 밟아야 하는지를 착각해 자신에게 와서 그런지 심사원은 나에게 정확히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여기, 하노이." 그녀는 거침없이 도장을 찍고 입국 날짜를 적었다. 분명 하노이로 들어가려는 이들이 훨씬 적었다. 며칠 후면 나도 이 공항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겠지.
편하고 빠르게 도시를 이동한 우리는 마치 약 육일 간의 여행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들떴다. 태국, 라오스, 그리고 베트남. 마지막 여정이다. 지금부터 세어도 나와 D가 이렇게 오래 여행한 적은 없었다. 기운을 내야했고, 새로운 문명을 체험해야 했다. 언젠가 기꺼이 이곳에 다시 올 마음이 들도록 나를 열어두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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