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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떴는데 머리가 좀 아팠다. D가 "7시 35분이야!"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처음에 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7시 35분이면 이른 거 아닌가? 우리가 나갈 시각은 정오가 아니었나? 그러나 곧바로 하롱베이 투어를 시작하는 밴이 8시에 우리를 픽업하러 오기로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짐도 제대로 안 싸뒀는데 끔찍한 일이었다. D는 머리를 감고 그 비눗물로 그대로 샤워를 했다고 하고, 나는 그나마 제대로 샴푸를 하고 샤워를 했다. D가 먼저 내려가고, 나는 마무리를 하는데 방으로 전화가 왔다. 8시 5분이었다. 라오스에서는 약속 시각에서 기본적으로 20분은 늦게 오고는 했는데, 베트남은 칼 같다. 나는 배낭을 맨 채 뭐 빠트린 게 없나 방안을 훑어보고는 황급히 로비로 내려왔다.
우리가 예약한 하롱베이 투어는 2박 3일 일정이었다. 하노이까지 밴을 타고 간 후 크루즈에 탑승해 하롱베이를 돈다. 그리고 배 위에서 하룻밤 잔 후, 다시 배를 갈아타 깟바 섬까지 이동하여 거기서 하루를 더 잔다. 우리는 특히 이번 투어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크루즈 여행에선 함께 가는 사람들이 누구냐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밴이 시내 한 바퀴를 다 돌며 모든 승객을 태웠을 떄,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온 스위스 여성과 부모님과 함께 온 독일 여성, 그리고 우리를 포함에 젊은 사람은 네 명이 전부였다. 대부분 부모님과 함께 오거나 중년 부부였다. 그러니까, 거의 효도 관광 크루즈를 예약한 셈이었다. 우리가 최연소는 아니었지만, 거의 차차연소는 되는 것 같았다. 처음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다른 밴을 봐도 젊은 사람들이 태반인데 어떻게 우린 중년 이상의 팀에 끼게 되었을까. 하지만 다행인 건 다들 서로 내외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머니와 이모를 모시고 온, 영어를 아주 잘하는 중년 베트남 여성은 함께 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쿠키와 캔디를 돌렸다. 딸과 함께 온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 부부는 인자해 보였고, 하와이 출신 남편과 말레이시아 출신 부인 부부는 먼저 말도 잘 걸어주고 농담도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마다가스카르 옆 작은 섬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부부와 아들의 아버지 세 사람이었는데 영어는 거의 못하고 악센트가 이상한 불어만 구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아들은 섬 사람이면서 생선을 싫어한다고 해서 모두를 웃기기도 했다. 그는 때때로 노래를 흥얼거렸고,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 열심히 애를 쓰기도 했다. 배 위에서 식사를 할 때, 영어를 전혀 못하는 아버지를 다른 테이블에 혼자 놔두고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 그 외에 역시 하와이에서 온 미국 중년 남성도 한 명 있었다. 모두 열 다섯 명이었다.
아스팔트는 잘 깔려있는데 이상하게 덜컹거리는 길을 오랫동안 달렸다. 중간에 아베쎄(ABC)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하롱베이까지 가는 길엔 소도시가 끝없이 이어졌는데, 그리 심심하진 않았지만 한편으론 별로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간판이 참 멋 없다는 생각만 좀 했을 뿐이다. 처음 두 시간은 내내 잤고, 휴게소에 들른 후의 나머지 한 시간 반 정도는 이것저것 하려고 애쓰다가 차가 너무 덜컹거려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하롱에 도착했다.
바다 위에 여러 척의 크루즈가 떠있는 풍경은 제법 멋졌다. 우리는 이십 여 분 정도 터미널에서 기다리다가 작은 보트를 타고 크루즈로 옮겨갔다. 배가 배와 만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섬의 기척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정이 그리 맑지는 않았고, 오히려 안개에 낀 듯 뿌옇기는 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매력일 수 있겠다 싶었다. 크루즈에 올랐다.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하룻밤 보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디젤엔진의 굉음과 기름 냄새와 함께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옆에 작은 섬이 수도없이 자라있는데 그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니며 우리는 점심 식사를 했다. 절경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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