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 - 밀란 쿤데라, '농담' 중 농담저자밀란 쿤데라 지음출판사민음사 | 1999-06-25 출간카테고리소설책소개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펴냈던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
그저 주립공원일 뿐인데, 도시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는지 이곳은 마치 밀림의 한가운데 같다. 고사리 같은 양치류부터 기괴한 열대식물까지 일정한 패턴 없이 모인 다양한 나무들이 대지를 덮고 있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커다란 나무가 자란 곳에선 식물의 축축한 숨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잘 닦인 산책로를 따라가고 있음에도 원시의 숲을 헤매는 기분이다. 눈앞에 늘어진 거대한 나무줄기는 나를 정서적으로 먼 곳으로 데려가려고 손짓하는 중이고, 어딘가에서 원시 생명체가 어슬렁거릴 거라는 무책임한 상상력도 여기에 동참한다. 문명의 힘으로 편하게 걷고 있지만 여기선 문명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리라는 착각을 피할 길이 없다. 그리고 숲이 보물처럼 감추고 있던 아카카 폭포가 나타났다. 그것은 물안개를 허리에 두르고 간극이..
베네치아에선 골목골목마다 곤돌리에와 흥정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이 아름다운 도시에서라면 태워주려는 사람이나 타려는 사람이나 웃으면서 원만하게 거래가 이뤄질 것 같지만더운 날씨 탓이었는지, 아니면 서로 수지가 맞지 않아서 그런지그날따라 단 한번도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특히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연인들이 그랬다.사실 6명 정도는 함께 나눠 내야 적당한 가격인데둘이서 지불하기에 곤돌라 한 대는 너무 비싸다.태양이 너무 뜨겁고 골목길엔 사람이 꽉 차 있어 낭만이 무럭무럭 피어오를 만한 상황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느 나라에서 왔든 각자의 처지를 잘 아는 연인이라면몇 십분을 위해 지나친 지출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남자는 선뜻 비싸다는 말은 못하고 여자의 눈치를 볼 것이며여자는 기다렸..
당시에 나는 그에 대해 증오밖에 없었으며, 이 증오란 것은 너무도 강렬한 빛을 발사해서 그 속에서는 사물의 윤곽이 사라져버리는 법이다. 중대장은 내게 그저 앙심을 품은 교활한 쥐새끼같이만 보였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그를 무엇보다, 한 젊은이로, 연기를 하는 한 사람으로 보게 된다. 어찌 됐거나 젊은이들이 연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놓는다. 그러니 그들은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들, 당시 유행하는 것, 자신들에게 맞는 것, 마음에 드는 것, 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 그리고 연기를 한다. 우리의 중대장 역시 아직 미완인 사람이었고, 어느 날 아침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우리 무..
어떤 음악을 다른 사람과 함께 듣고 싶어지는 이유는자신의 감정을 전이시키는 데 음악만큼 빠르고 효과적인 매개체가 없기 때문이다.여기에는 전하고 싶은 이야기나 정서가 한껏 담겨있기도 하고,지금 상황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음악이 저 자신 안에선 일종의 화학작용을 일으켜현재 상태를 묘사할 단 하나의 표현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공감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우릴 움직인다.그것은 블로그의 배경음악을 신중하게 고르게 하고,에스엔에스를 통해 듣고 있는 음악을 공유하게 한다.그도 아니면 옆 사람에게 이어폰 한쪽을 건네게 하거나.이는 참 매력적인 수고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여행을 떠나 멀리 있는 누군가와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이 생겼다면그 노래는 여행 중의 당신을 정의할 것이다.훗날 그 음악을 다시 들었을..
인터라켄 지역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이 참 많다.융프라우요흐에 오르는 산악열차 티켓을 살 때도 개를 동반하는 요금이 따로 있을 정도다.다들 어디서 저런 크고 멋진 개들을 데려다 키우는가 궁금했는데어느 호텔 로비에 보니 반려견들을 데리고 산책을 하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더라.아! 모두 렌트도그구나.돈을 주고 빌리는 셈이지만이 공기 좋고 풍경 좋은 알프스 산맥의 한 쪽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구와 걸을 수 있다는 게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회복시키는 일일지 기대하게 된다. @Wengen, Switzerland canon A-1 + 50mmsuperia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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