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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이 난 게 분명했다. 오늘은 방콕을 떠나는 날이니까, 이 마시고 또 마시고 싶은 도시를 벗어나 치앙마이에 도착하면 술을 좀 줄이자고 다짐했다. 몸에 힘이 없으니 글도 잘 써지지 않는다. 비단 여행에서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뭐라도 계속 쓰려면 몸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되도록 술을 안 마시려 하는 거고, 담배도 피우지 않으려고 (헛된) 노력을 하는 것이다. - 신기하게도 담배를 피우면 글이 잘 써지긴 하는데 노후에 있을 병이 걱정된다. - 맑은 정신과 건강한 몸은 책상 앞에 앉아있는 데 꼭 필요한 특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그렇게 열심히 뛰는지 알 것 같고, 그 점을 굉장히 존경스럽게 생각한다.
아마 앞으로 이 이야기를 다양한 버전으로 계속할 것도 같지만, 여행 중에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양날의 검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글을 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반나절 동안 했던 일을 단순 정리만 하는 데도 최소한 삼십 분 이상은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며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맞는 건지, 현장에서만 담을 수 있는 감상을 신선하게 남겨야 하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물론 글을 써도 시간은 많다.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여행 중에 글을 쓰고, 또 어떤 이들은 돌아오고 나서 글을 쓴다. 일관된 방식이 없다는 건 확실하며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따르면 된다는 게 정답이겠지만, 나는 아직 내게 맞는 스타일을 알지 못한다. 도대체 나 자신에 관해서도 아는 게 없는 것이다...
다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노트에 뭔가를 쓰고 있는 이들을 만나면 동지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 책을 읽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 대학 에세이 시험 시간도 아니고 굳이 짬을 내어 무엇을 쓰는 사람에겐 그 글이 무엇이 됐든 저마다의 향취가 있다. 나는 그 향기를 사랑하고, 그 향기가 나에게서도 풍기기를 원한다. 언젠가 그런 사람과 가까워질 수 있다면, 나는 나의 글을 번역해 읽어주고 그는 그의 글을 나에게 읽혀줄 수도 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부디 그 또는 그녀가 나의 글을 마음에 들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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