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사겠다며 D를 끌고 간 곳은, 사실 무슨 대단한 곳이 아니라, 그냥 스타벅스였다. 스타의 거리로 들어서기 전에 이 층짜리 스타벅스가 하나 있었는데, 딱 봐도 야경이 끝내줄 것 같은 명당이었다. 주문을 하고 혹여나 앉을 자리가 없을까 전전긍긍하며 이 층으로 올라갔지만 의외로 빈자리가 많았다. 처음엔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금방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고스란히 몰려오는 더위와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절대 시원하진 않다.) 지칠 줄 모르는 모기떼 때문이었다. 온종일 카페인 섭취도 못 했고 갈증도 났다는 표면적인 동기를 떠나서, 내가 굳이 스타벅스를 찾은 이유는 외국에 가서 꼭 한 번은 맥도널드를 찾는 이유와 같다. 스타벅스와 맥도널드 같은 거대 프랜차이즈 기업의 매장들은 문명화된 ..
:: 한 번 고생해서 그런지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특히 밤에 더 날카로워지는 D의 감각이 큰 도움이 되어 낮 풍경을 뒤집어 놓은 듯한 요지경을 지나면서도 길 한번 헤매지 않고 몽콕 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퇴근 시간은 피한 것 같지만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거나 시내로 나가는 인파가 엉켜있는 모양이었다. 이 많은 사람이 낮에 보았던 아파트에 포개져 들어가는 상상을 하자 인간 피라미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현기증이 일었다. 제대로 된 열차를 타는 것은 제대로 된 출구를 찾는 것보단 훨씬 쉬었다. 몽콕도 두 가지 노선이 겹치는 환승역이지만, 각 노선이 한국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위아래 층으로 나누어져 있어 헷갈릴 일이 없었다. 이처럼 홍콩 지하철을 몇 번 ..
:: 몇 시간 전에 먹은 기내식만으론 피로를 감당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호텔로 오며 지나쳤던 현지 식당들을 떠올려 봤지만, 지금 당장 도전하긴 무리였다. 안전한, 보장된, 그러면서 우리가 좋아할 만한 메뉴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햄버거 같은. 방 크기에 적응을 좀 하고 나서 (다시 들어올 때 또 놀라면 안 되니까) 호텔을 나섰다. 로비엔 페인트 냄새와 분진이 떠돌고 있었다. 계단 한쪽은 막힌데다가 형편없이 좁아서 단체 두 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맞닥트려도 엉겨붙어 지나가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나면 최소한 호텔 외관보단 그럴싸하게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니 똑같이 뜨겁고 습한 거리라도 발걸음이 가볍다. 지도 없이 낯선 길을 따라 걸으며 여행의 즐거움 중에서도 ..
8번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적당한 에어컨 바람 덕에 기분이 좋았고, 하차하고 싶을 때 잡아당기면 되는 줄을 보며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손잡이를 당기면 버스 위에 달린 굴뚝에서 나팔 소리와 함께 뽀얀 김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런 상상을 하자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라도 벨을 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충동을 이겨내고 책을 펼쳤을 땐 이미 버스 안이 꽉 차 있었다. 하지만 진작 자리를 차지한 나는 여유를 즐기는 중이었다. 몇 번이고 읽은 책이 오늘도 흥미로웠다. 이국적인 장소를 탐색하는 화자의 이야기를 또 다른 이국적인 장소에서 읽고 있자 나 역시 먼 곳에 왔다는 현실감이 선명해졌다. 우리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여행을, 정서적으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진행 중이었다. 그래..
1.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하나는, 때로는 그것이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 되기도 하는데, 책이나 영화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장소에 실제로 가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품어온 로맨스나 자극을 받은 누군가의 경험담, 한 번 스쳤을 뿐인데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가 우리를 먼 곳으로 이동하게 한다. ‘비포 선셋’의 만남을 떠올리며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방문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선 데보라 카를 기다리던 캐리 그랜트의 모습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세대가 다른 나는 만나자마자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던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을 찾게 되겠지만). 성지순례를 떠나는 사람들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발상지와 경전 속 일화가 벌어..
하와이 여행기라면, 최소한 하와이 가이드북이 소개하는 몇 군데 정도는 언급이라도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이 눈으로 직접 보고 왔다는 사실 증명에 지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두 시간 동안 오하우의 명소 세 군데를 돌아보고 남은 건 메모 열 줄과 사진 몇 장뿐이었다. 그럼에도 물 먹인 소처럼 부풀려 스케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나 자신에게 그곳들을 잊지 말라고 환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특별한 의미나 감상을 끄집어내긴 어렵지만 가끔 남국의 정서를 되살리고 싶을 때 꺼내보기 좋은 기억으로서 말이다. 햇살은 아침나절부터 강렬했다. 가이드는 일정이 제대로 시작되기 전에 마음이라도 가다듬으라는 듯, 해안 도로에서 툭 튀어나온 갓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바다를 감상할 시간을 줬다. 선글라스를 준..
만약 당신에게 많은 돈이 있다면 이런 곳에서 사는 건 어떨까? 오하우 섬 일주는 호놀룰루에서부터 시작해 반시계방향으로 섬을 도는 투어다. 가이드는 15인승 밴의 가속 페달을 밟으며 처음이니까 흥미로운 곳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하와이 카이. 섬 남동쪽에 위치한 부촌으로 하와이의 비버리 힐즈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이 그에게 흥미로운 곳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밝혀지기 전, 호놀룰루 시내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하게 닦인 도로로 접어들었다. 금과 옥과 대리석으로 장식한 휘황찬란한 궁궐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저택이라 불러줘야 예의겠다 싶을 정도로 커다란 단독 주택들이 이어졌다. 하와이에서도 알아주는 부자들이 모인 하와이 카이 커뮤니티에 참여하려면 못해도 270만 달러 이상의 집을 사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하와이에서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자동차 번호판이다. 그 네모난 금속판 위엔 항상 알록달록한 무지개가 떠있다. 시선을 이리 돌려도 보이고, 절로 돌려도 보인다. 어쩐지 귀여운 장난 같아서 속 안의 심각한 매듭 하나가 풀리는 기분이다. 물론 이곳이 꿈과 희망에 가득 찬 섬이라 그 상징으로써 그려놓은 건 아니다. 국지성 비가 자주 내리는 하와이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 무지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와이에서 무지개를 처음 본 건 도착한 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내로 진입할 즈음 빗방울이 차창을 때렸다. 해가 멀쩡히 떠있어도 꿋꿋하게 내리는 여우비였다. 남국의 섬에선 흔히 있는 일이겠거니 하는데, 저 멀리 아치형의 프리즘이 반짝였다. 빨. 주. 노..
1. 무선 인터넷 이름에 프리나 메트로가 붙은 것들은 한두 번 속고 나니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됐다. 정오가 조금 지났는데 날이 개지 않아 모어 런던은 늦은 오후의 신시가지 같았다. 묘한 얼굴을 한 철상鐵像과 타워 브리지를 스케치하는 화가를 휴대전화의 카메라에 담고 무심코 설정창을 열었다. 저도 모르게 헛숨이 나왔다. 드디어 나와 말이 통할 것 같은 이름 하나를 찾은 것이다. 등 뒤에 있는 시청사나 사무용 빌딩이 고향인,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부채꼴이 한 개와 두 개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예민한 녀석이었다. 시험 삼아 담벼락에 방금 찍은 사진을 올려보았다. 느리지만 꾸준하게 전송창이 차오르고, 지금 이 순간이 대부분 한국에 있는 나의 친구들에게 공유되었다. 시운전이 끝나자 메신저를 통해 그녀에게 말을 걸었..
1. 새벽에 눈이 떠졌다. 창밖으론 아직 동이 트지 않은 런던 근교의 황량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젯밤 런던에 도착한 후 호텔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바로 잠이 들었다. 선잠이 들지도 않았고 비행으로 말미암은 피로도 없었다. 이럴 땐 시차 적응이 빠른 체질에 참 감사하게 된다. 어울리지 않게 새벽 공기가 마시고 싶어졌다. 미로처럼 길고 복잡하며, 가끔 오븐 타이머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복도를 빠져나왔다. 호텔 정문 앞엔 벌써 먹이를 잡아 온 새들이 식전 기도를 지저귀고 있었다. 기온이 낮지는 않은데 바람이 불자 몸이 움츠러들었다. 런던의 스산한 추위가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담배를 한 대 태우면서 새벽부터 어디론가 바쁘게 향하는 차들을 본다. 출근길인가 싶어 이네도 참 빡빡하게 사는구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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