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갑작스럽게 돌아갈 시간이 됐다. 정리하다 보니까 셋째 날 낮 이후로는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어느새 출국을 위한 터미널에 있었고, 멍한 기분으로 게이트를 찾아 떠돌아다녔다. 어쩌면 이번이 진짜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허전함을 느꼈다. 어디든 만족했던 곳이라면 "언제 또 오겠어?" 따위의 맥빠지는 소리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었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오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다. "한동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전등에 매혹된 여름 벌레처럼, 피할 곳이 절실한 도망자처럼 홍콩에 또 오진 말자고, 여행 횟수가 줄어들 테니 여력이 된다면 그 기회를 다른 도시에 주자고 다짐한다. 여행을 떠나서 꼭 다시 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워 본 적은 있어도 꼭 다시 오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
너츠포드 테라스에서 한국 식당이 많은 거리를 지나 좀 더 아래쪽으로, 스타의 거리에 가까운 쪽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점점 강렬해지는 배고픔을 살살 달래며 눈에 띄는 근사한 곳이 나타나기를, 저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그런 곳을 발견하기를 바랐다. 물론 메뉴 자체는 일식으로 하자고 이미 결정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패할 확률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일식을 먹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오히려 홍콩에서 보다 만족스러운 일식을 먹으리란 기대에 부풀어 새로운 일식당을 향한 도전 의식을 불태웠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런 의미에서 '고궁'이란 한식점도 우리의 주의를 끄는 덴 실패했다. 오히려 내가 담고 싶었던 건 하늘이었다. 정말 가끔씩 밖에 찍지 않게 된 하늘을 말이다. 건물..
전날 란콰이퐁에서 신나게 마시다 들어온 관계로 오늘도 거의 정오가 다 되어 눈을 떴다. 홍콩의 아침을 보지 못하는 건 이젠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오히려 너무 당연한 일이랄까. 홍콩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가이드북을 뒤적거리다 눈여겨 볼 부분을 하나 추측하자면, 아침 일찍 공원에 가면 태극권을 하는 시민들을 볼 수 있다는 안내가 아닐까 한다. 일단 나도 그랬으니까. 그땐 몰랐다. 아침에 공원에 가는 부지런함이 나에겐 얼마나 요원한 일이었는지. 공중 정원에 가 하늘을 올려다 보니 날이 많이 흐렸다. 사실 지금까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우리 여정 내내 홍콩에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를 봤었기 때문이다. 금요일부터 온다는 비가 토요일로, 토요일부터 온다는 비가 일요일로 미뤄져 마침내 먹구름이 꼈다. 수중전(?..
어쩌면 이번 우리 일정 중 가장 글로 옮기기 힘든 시간이 아닐까 한다. 토요일 밤, 란콰이퐁에서의 축제. 그저 맥주와 칵테일에 취해 춤추고 놀았을 따름인데 거기에 코멘트 붙일 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자세를 고쳐잡는다. 사라진 징검다리처럼 밤 시간을 뛰어넘을 순 없지 않겠느냐고. 여행 둘째 날 밤의 우리 일정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 완차이 어느 골목길에서 아주 싸고 맛있는 초밥집을 발견한 우리는 저녁으로 초밥을 먹었다. 그리고 진 토닉을 한 잔 만들어 마신 후, 곧바로 침사추이의 너츠포드 테라스로 향했다. 저번 여행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올 나잇 롱'이란 바에 가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영 흥이 나지 않았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스테이지에서 볼룸댄스를 추고 계셨는데 처음 한 시간 정도는 즐거웠지만..
해는 뜨지 않았지만, 더위도 같이 숨은 건 아니었다. 종종 약한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며 습도는 한계치를 향해 내달렸다. 바다는 불쾌지수를 배출할 거대한 해방구였으나 무지막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진 못했다. 해풍, 해풍만 우리를 조금 위로해 주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게 제일의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소금기에 바랜듯한 건물 외벽의 색을 보고 있으면 그 모든 여름이 갑자기 감당 가능한 장애처럼 느껴졌다. 집과 사무실과 카페와 대중교통에서 지금껏 너무 습관적으로 "더워 죽겠다."라고 투덜거려오지 않았던가. 그건 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피상적인 대화를 메우기 위한 공용 비밀번호였다. 습관적인 인사, 누구나 알고 있어서 유출할 필요조차 없는 패스워드. 우리는 더위에 공감함으로써 우리에게 필..
둘째 날, 우리는 갈 곳을 정해두고 움직이기로 했다. 어디로 갈지 정하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탠리로 가자! 그게 다였다. 결정은 삼 분도 안 돼서 끝났다. 대신 첫 번째 여행처럼 비싼 빅버스를 타지 말고 일반 버스를 타자는 데 중지가 모여졌다. 그게 훨씬 싸고, 좀 더 빠르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수도 없이 트램을 지나쳤는데 왜 이건 타지 않았을까. 창문이 다 열려있어 더워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미 호텔 가까운 곳에 있는 노선을 알아봐 둔 우리는 느즈막이 일어나 타임 스퀘어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어제 완차이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타임 스퀘어 바로 앞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스탠리 행 버스 정류장을 향해서였다. 우리가 머무는 코스모 호텔 바로 옆에 터널이 하나 있는데 빅버스처럼 그..
사람에 치이고 건물에 깔보이며 꽤 오랜 시간을 코즈웨이 베이 근방에서 보냈다. 그래도 견딜 만은 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로 여름의 홍콩은 사람을 몹시 지치게 만드는 괴력을 갖고 있었다. 온도와 습도가 동시에 높은 것은 물론, 에어컨 실외기와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공적인 열기까지 더해져 힘들다는 인식 이전에 몸이 나자빠질 정도였다. 그러나 나와 D는 꾸역꾸역 걸었다. 우리는 마치 밀려오는 파도에 맞서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나가려는 사람, 이유도 없이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사람 같았다. 물론 거리의 인파도 피로에 한몫했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름도 모르는 타자의 홍수에 휩쓸려 허우적거릴 수 있음이 이 도시의 매력이자 피로 요인이라는 게 말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인..
척후병처럼 주변 정탐을 마친 우리는 전리품으로 얼음을 사가지고 왔다. 한낮의 축배를 위해서였다. 짐을 마저 풀고 음료수로 드라이 진을 한 잔 마신 다음 호텔의 공중정원에 가 보았다. 방에서는 와이파이가 되지 않지만, 로비와 공중정원에선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 도심 속 테라스는 엘리베이터 버튼 옆에 붙은 황금색 안내판에서 읽으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장소였다. 커피 머신이 준비되어 있고, 매일 메뉴가 바뀌는 과일 바구니도 있었다. 나나 D 같은 사람들에겐 수분과 무기질, 비타민 따위가 절실하다는 충고를 에둘러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정작 나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몇 개 집어 먹지 않았지만 말이다. 누구든 편하게 와서 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돌아가곤 했다.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고, 담배를 피우..
나와 D가 홍콩에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숙소 주변의 편의점을 찾는 것이다. 마트가 싸서 좋긴 하지만, 조금 위험하다. 한밤중엔 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음료수나 얼음, 간식거리가 필요할지 모르는 게 우리의 여행이다. 하긴 쇼핑센터에 입점한 곳을 제외하면 홍콩에서 마트를 본 적도 별로 없다. 편의점을 찾는 산책은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이 세 번째라 적응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긴 했지만, 의례적으로 행하는 의식이라고나 할까. 지독한 여름 날씨를 몸으로 받아낼 각오가 절로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행자는 걸어야 한다. 여행은 도보에서 시작하고, 도보로 맺음 해야 한다. 시속 4.5km는 생각의 속도와 알맞은 보조를 이룬다. 홍콩섬과 주룽반도의 풍경은 확실히 달랐다. 그나마..
인천 공항에서 홍콩의 첵랍콕 공항까지 가는 네 시간 좀 안 되는 시간은 장거리 비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그럭저럭 견딜 만한 고통을 줄 것이다. 나로서는 이 네 시간이 좀 어중간하다. 영화를 한 편 보면 딱 좋겠지만, 저가 노선엔 공용 스크린도 없다. 모바일 기기로 영화를 보는 데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도착하는 순간 들여다도 안 볼 영상물을 넣어 오는 게 귀찮기도 하다. 책을 읽자니 온갖 기대와 흥분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 책 역시 도착하면 표지 쓰다듬는 일조차 없을 게 뻔하고 말이다. 여행 노트를 써 볼까? 이제 막 시작한 여행인데 쓸 말이 있을 턱 없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잠을 청해 본다. 그러나 기내가 환해서 오래 잠들 수가 없다. 거참 애매하고 또 애매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빈자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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