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갑작스럽게 돌아갈 시간이 됐다. 정리하다 보니까 셋째 날 낮 이후로는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어느새 출국을 위한 터미널에 있었고, 멍한 기분으로 게이트를 찾아 떠돌아다녔다. 어쩌면 이번이 진짜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허전함을 느꼈다. 어디든 만족했던 곳이라면 "언제 또 오겠어?" 따위의 맥빠지는 소리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었다. 인연이 닿으면 다시 오게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다. "한동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전등에 매혹된 여름 벌레처럼, 피할 곳이 절실한 도망자처럼 홍콩에 또 오진 말자고, 여행 횟수가 줄어들 테니 여력이 된다면 그 기회를 다른 도시에 주자고 다짐한다. 여행을 떠나서 꼭 다시 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워 본 적은 있어도 꼭 다시 오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
너츠포드 테라스에서 한국 식당이 많은 거리를 지나 좀 더 아래쪽으로, 스타의 거리에 가까운 쪽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점점 강렬해지는 배고픔을 살살 달래며 눈에 띄는 근사한 곳이 나타나기를, 저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그런 곳을 발견하기를 바랐다. 물론 메뉴 자체는 일식으로 하자고 이미 결정한 상태였지만 말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패할 확률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일식을 먹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오히려 홍콩에서 보다 만족스러운 일식을 먹으리란 기대에 부풀어 새로운 일식당을 향한 도전 의식을 불태웠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런 의미에서 '고궁'이란 한식점도 우리의 주의를 끄는 덴 실패했다. 오히려 내가 담고 싶었던 건 하늘이었다. 정말 가끔씩 밖에 찍지 않게 된 하늘을 말이다. 건물..
사람에 치이고 건물에 깔보이며 꽤 오랜 시간을 코즈웨이 베이 근방에서 보냈다. 그래도 견딜 만은 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로 여름의 홍콩은 사람을 몹시 지치게 만드는 괴력을 갖고 있었다. 온도와 습도가 동시에 높은 것은 물론, 에어컨 실외기와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공적인 열기까지 더해져 힘들다는 인식 이전에 몸이 나자빠질 정도였다. 그러나 나와 D는 꾸역꾸역 걸었다. 우리는 마치 밀려오는 파도에 맞서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나가려는 사람, 이유도 없이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사람 같았다. 물론 거리의 인파도 피로에 한몫했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름도 모르는 타자의 홍수에 휩쓸려 허우적거릴 수 있음이 이 도시의 매력이자 피로 요인이라는 게 말이다. 하지만 이 도시의 인..
척후병처럼 주변 정탐을 마친 우리는 전리품으로 얼음을 사가지고 왔다. 한낮의 축배를 위해서였다. 짐을 마저 풀고 음료수로 드라이 진을 한 잔 마신 다음 호텔의 공중정원에 가 보았다. 방에서는 와이파이가 되지 않지만, 로비와 공중정원에선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 도심 속 테라스는 엘리베이터 버튼 옆에 붙은 황금색 안내판에서 읽으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은 장소였다. 커피 머신이 준비되어 있고, 매일 메뉴가 바뀌는 과일 바구니도 있었다. 나나 D 같은 사람들에겐 수분과 무기질, 비타민 따위가 절실하다는 충고를 에둘러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정작 나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몇 개 집어 먹지 않았지만 말이다. 누구든 편하게 와서 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돌아가곤 했다.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고, 담배를 피우..
나와 D가 홍콩에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숙소 주변의 편의점을 찾는 것이다. 마트가 싸서 좋긴 하지만, 조금 위험하다. 한밤중엔 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 음료수나 얼음, 간식거리가 필요할지 모르는 게 우리의 여행이다. 하긴 쇼핑센터에 입점한 곳을 제외하면 홍콩에서 마트를 본 적도 별로 없다. 편의점을 찾는 산책은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이 세 번째라 적응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긴 했지만, 의례적으로 행하는 의식이라고나 할까. 지독한 여름 날씨를 몸으로 받아낼 각오가 절로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행자는 걸어야 한다. 여행은 도보에서 시작하고, 도보로 맺음 해야 한다. 시속 4.5km는 생각의 속도와 알맞은 보조를 이룬다. 홍콩섬과 주룽반도의 풍경은 확실히 달랐다. 그나마..
인천 공항에서 홍콩의 첵랍콕 공항까지 가는 네 시간 좀 안 되는 시간은 장거리 비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그럭저럭 견딜 만한 고통을 줄 것이다. 나로서는 이 네 시간이 좀 어중간하다. 영화를 한 편 보면 딱 좋겠지만, 저가 노선엔 공용 스크린도 없다. 모바일 기기로 영화를 보는 데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도착하는 순간 들여다도 안 볼 영상물을 넣어 오는 게 귀찮기도 하다. 책을 읽자니 온갖 기대와 흥분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 책 역시 도착하면 표지 쓰다듬는 일조차 없을 게 뻔하고 말이다. 여행 노트를 써 볼까? 이제 막 시작한 여행인데 쓸 말이 있을 턱 없다.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잠을 청해 본다. 그러나 기내가 환해서 오래 잠들 수가 없다. 거참 애매하고 또 애매한 시간이다. 그렇다고 빈자리를 ..
:: 세나도 광장으로 이번엔 제대로 중심부로 온 모양이다. 카지노를 나와 선착장으로 돌아온 후, 다시 마카오 윈 호텔 행 셔틀 버스를 타고 호텔촌에 도착했다. 주변엔 어느 하나 크고 화려하지 않은 건물이 없었다. 윈 호텔만 해도 건물 전체가 황금색 유리로 도배되어 있었다. 마당엔 넓은 분수대와 한쪽으로 기운 부채꼴 모양의 구조물이 있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크고 화려하지만, 동시에 모든 게 낡았다. 어디에서도 음악 소리가 들려오지 않아 거리는 음소거 버튼이 눌린 듯 조용했다. 눈 부신 네온사인도 침묵 속에서 깜빡였다. 모든 게 시시각각 움직였지만, 모든 게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각과 청각의 불균형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 셋 모두 적응이 잘 안 되는 상태에서 마침 화..
:: 마카오로 가는 길 전날 너츠포드 테라스에서 격하게(?) 논 탓인지 오늘도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창문 없는 방은 아침이 왔다는 소식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고, 어영부영 한낮이었다. 마카오를 갔다 오는 날인데 제대로 늑장을 부린 격이었다. 가장 먼저 일어나 분주하게 우릴 깨운 Y는 씻는 것도 일등이었다. 나와 D가 기상 후 갑작스레 덮쳐오는 체력의 한계에 정신을 못 차린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저 셋 다 처음 가보는 곳, 마카오로 간다는 기대 하나로 버텼다. 이번 여행에서 마카오 일정을 맡은 Y는 선별된 가이드로서 우리에게 커피도 내려주고 방도 정리하고 가방을 싸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이 녀석, 오늘 뭔가를 보여주긴 제대로 보여주려나 보구나. 나와 D는 기대를 안고 그의 지시에 따라 몸을 일으..
[지난글] :: 파리 여행 노트 - 루아르 고성 #1 쉬농소 성 가는 길 [지난글] :: 파리 여행 노트 - 루아르 고성 #2 쉬농소 성 [지난글] :: 파리 여행 노트 - 루아르 고성 #3 작은 마을에서의 점심 식사 고성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는 샹보르 성이다.루아르 계곡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성으로 알려진 곳으로 쉬농소 성에서 두 시간 좀 안 되는 거리에 있다.사실 거대하다는 말 만으론 그 규모가 상상이 되질 않았다.거대한 성이라.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나 판타지 영화에서 겨우 볼 수 있지 않았던가. 중간에 앙부아즈 성을 지나갔다.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수아 1세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와 저 앙부아즈 성에서 생을 마감했다. 주차장에 내리면 성까진 십여 분 정도 걸어야 한다.가는 길엔 작은 마을을 지난다.지금..
:: D의 사진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바깥은 완벽히 어두워져 있었다.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장어가 들어가 배는 든든하고, 이미 밤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시간에 대한 미련으로 가슴 속이 간질거렸다. 여행은 무서운 속도로 진행 중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휴지기 - 붕 뜬 기분에 사로잡혀 생각도 행동도 의미를 잃어버리는 순간 - 가 찾아올 때가 있다. 여행이 언제나 신선하고 흥미로운 건 아니다. 나와 D는 딱히 궁금한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는 몸으로 침사추이의 골목에 멍하니 서 있었다. 뭘 할까? 어딜 갈까? Y를 다시 만나기까지 적어도 한 시간은 남았다. 외국의 도시에서 오랫동안 못 본 친구와 조우하고 있는 Y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친구의 여자친구와 친구 여자친구의 친구들에 둘러싸여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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