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는 루앙 프라방에 도착했다. 오히려 예상보다 빨라 7시간 반 정도 걸린 모양이었다. 갑자기 배가 멈추더니 뒤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이곳이 루앙 프라방이라고 알려주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드디어 라오스 여행의 시작이 아닌가. 부푼 가슴을 안고 선착장에서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처음부터 우리를 맞이한 건 도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송태우 티켓을 사는 작은 석재 건물이었다. 일인 당 2만 낍에 티켓을 사야 하며, 도저히 걸어갈 수는 없는 거리였다. 원래 선착장이 중심지에서 가깝다고 알고 있었던 우리는 당황스러웠고, 다른 이들도 모두 그렇게 보였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라오스 돈도 부족해 일부는 달러로 계산했다. 턱없이 낮은 환율을 적용 받았다. 안 그래도 화폐 단위가 우리나라보다..
배가 9시쯤 출발한다고 해서 오늘도 일찍 일어났다. 머리가 좀 아프긴 했지만, 교복을 입고 스쿠터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내려다 보니(방이 2층에 있었다.)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었다. 라오스는 스쿠터를 몰 수 있는 연령 제한이 매우 낮은 모양이었다. 집과 학교가 꽤 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간밤에 어디서 잤는지 모를 여행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선착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대열에 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미리 바게트 샌드위치를 주문해 점심 대비를 하고, 물을 샀다. 오늘은 더 긴 슬로우 보트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끝에 루앙 프라방이 있기도 했다. 오늘 탄 슬로우 보트는 전날보다 더 작은 배였다. 여정이야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침엔 쌀쌀하더니 정오에 가까워지면서 겉옷을 벗..
전편에서 "몇 시간 동안 계속될 항해가 몹시 기대됐다."라고는 썼지만, 결론적으로 슬로우 보트 여행은 어마어마한 여정이었다. 일단 너무 더웠다. 차가운 바람과 뜨거운 바람이 번갈아 불어왔고, 때로는 공기가 미동조차 하지 않아 온실로 들어온 비참함을 느끼기도 했다. 의자도 그리 편하진 않았고, 사람들은 무지막지하게 많았다. 게다가 뒤에 앉았더니 모터 소리가 무진장 요란했다. 소리는 시속 100km인데 그에 비해 효율이 너무 적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후미에서 담배는 마음껏 피울 수 있었다는 것 정도일까. 서양인 동양인 할 것 없이(서양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시간이 갈수록 지쳐 간다는 게 느껴졌다. 의자에 드러눕고, 발을 난간에 올리고, 끊임없이 차가운 맥주를 사 마시고, 아예 후미에 모여 앉아 라오..
어제 일정 중 가장 일찍 일어났다고 했지만, 오늘 그 기록을 경신했다. 무려 여섯 시 반에 일어난 우리는 국경을 넘어 배를 탈 준비를 했다. 아침은 시원했지만, 정오 이후에 몰아칠 더위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배를 타고 내려가며 몸으로 느낄 열기였다. 고수가 들어간 토스트를 아침으로 먹은 후, 어제 만났던 사람들과 다시 인사를 했다. 간밤에 새로운 일행도 와 있었다. 스위스에서 온 남자와 영국에서 온 여자. 꽤 붙임성이 좋고 잘 생긴 스위스 남자는 무려 7개월 동안 여행을 한다고 했다. 아마 그가 여행할 많은 나라 중에는 한국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라오스에서 15일간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우리를 제외하고 모두 도착 비자를 받을 준비를 했다.대단하다. 스위스를 제외하고는 심지어..
한국의 전원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은 길을 세 시간쯤 달려서 드디어 치앙콩에 도착했다. 치앙콩은 아주 작은 마을로, 다음 날 태국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들어가는 여행자들이 주로 머문다. 밴은 우리를 치앙콩 주거리에서도 꽤 떨어진 게스트하우스에 내려줬다. 방 키를 배정하고, 내일 일곱 시 반에 아침 식사를 한 후 국경을 넘어 훼이싸이로 이동한다고 알려주었다. 운전자는 인내를 갖고 모든 이의 짐을 내려준 후, 담배를 한 대와 맥주 한 병을 집어삼키곤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갔다. 게스트하우스는 빌라 두 동이 붙은 구조였으며 아주 낡은 시설을 자랑했다. 키를 배정해 주거나 물과 맥주를 파는 아저씨는 굉장히 느린 속도로 일 처리를 했는데 약간 몸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무뚝뚝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정이 가는 ..
모든 일정을 통틀어 오늘 제일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치앙마이를 떠나 화이트 템플을 거쳐 태국과 라오스 국경 마을인 치앙콩으로 간다. 여행사에 예약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을 만날까 기대를 했었는데 오전 10시 20분쯤 우릴 데리러 온 밴에는 브라질에서 온 남자와 칠레에서 온 여자, 그리고 태국 여인과 그의 프랑스인 남자친구가 타고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20분이 지나도 데리러 오는 사람이 없어 사기라도 당했나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역시 조금 늦기만 했을 뿐 별일 없이 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곤 영국에서 온 여성과 독일에서 온 것 같은 커플까지 합승한 후 아름다운 치앙마이를 떠났다. 치앙마이에서 더 북쪽으로 향하는 길은 그 주변이 한국의 시골과 흡사했다. 밭이 ..
여기서 여행을 하며 보았던 길거리의 개와 고양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외국을 다니다 보면 유독 개와 고양이갸 많다는 걸 깨닫고는 한다. 유럽에선 대체로 애완견이 눈에 많이 띈다면, 태국과 라오스에서는 종자를 알 수 없는 큼직한 개들이 많이 보였다. 다른 도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대부분 줄로 묶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길거리에 큼지막한 개가 앉아있으면 털이 쭈뼛 설 정도로 놀라고는 했는데, 녀석이 마음만 먹으면 일 초 만에 나에게 뛰어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너무 후텁지근한 날씨 탓인지 녀석들은 움직일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방콕에서는 내 바로 옆에 시커먼 개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걸 뒤늦게야 깨닫고 흠칫 놀랐는데, 녀석은 나를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늦잠을 잔 관계로 혹시나 해 볼까 했던 집라인 투어는 물 건너 갔다. 게다가 너무 비싸기도 했다. 대신 치앙콩까지 올라가 라오스 훼이싸이로 넘어간 다음 배를 타고 루앙 프라방으로 가는 여행사 프로그램을 찾아냈다. 무려 2박 3일에 걸친 긴 여정이었지만, 숙박도 하루 포함이고 밥도 주는 데다가 슬로우 보트도 예약이 가능했기 때문에 다른 루트는 고려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배를 타고 메콩 강을 따라 라오스 루앙 프라방으로 간다! 게다가 한 사람당 1,600~1,850밧 이었으니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느린 배니까 멀미도 하지 않을 것 같았고. 우리는 늦은 점심도 먹고 빨래도 하기 위해 천천히 걸어나갔다. 하루하루를 아주 빠르게 소진하는 느낌과 여유를 만끽하며 휴가를 즐기는 느낌이 번갈아 찾아왔다. 밤..
밤에도 멀리 나가지 않고 구시가지에서 놀기로 했다. 조 인 옐로우라는 펍이 제법 유명한 모양이었다. 한량처럼 가방도 들지 않고 걸어가 우선 조 인 옐로우(Zoe in yellow) 바로 옆에 있는 48 가라지라는 야외 바에서 버킷으로 쌩쏨 하이볼을 마셨다. 말끔한 옷을 입은 종업원들은 놀라울 정도로 친절했다. 여전히 모기가 극성이었지만, 밤바람은 방콕보다 훨씬 시원해 야외에 앉아있을 만했다. 시원한 초가을 밤으로 훌쩍 뛰어넘은 기분이었다. 카오산 로드처럼 엄청난 사람으로 붐비는 곳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그에 못지 않았다. 여자들은 술을 마시면서 테이블 위에서 카드 게임을 했고, 조 인 옐로우의 스테이지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가볍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열차로 넘어오며 음주를 하루 쉬었더니 버..
치앙마이 기차역에서 내렸을 때, 잠깐 방콕과는 다른 나라로 온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느꼈다. 어떤 색다른 풍경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열차에 있다가 밖으로 빠져나와서 그런 모양이었다. 하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조용하고 한적하다는 건 사실이었다. 플랫폼으로 쏟아져 나온 각국의 여행자들은 무거운 배낭을 흔들며 인포메이션 부스에서 지도를 얻고 자기가 가야 할 곳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특히 서양인들의 60, 70리터 짜리 배낭은 압도적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여행을 하길래, 도대체 무엇을 그리 챙겨다니길래 저 큰 가방이 꽉 차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을 먹고 다니길래 저 큰 가방을 초등학생 책가방 메듯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번 여행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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